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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도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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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dk호동 조회: 687회 댓글: 0건 작성일: 작성일2013-11-17, 11:28

본문

우리가 성화의 차원을 신앙에서 강조할 때 빠지게 되는 오류와 위험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앞에서 여러 번 언급한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란 우리의 성화의 노력, 선행들이 영혼구원의 조건으로 인식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나의 행위로 인식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오류입니다. 새벽기도에만 갔다 오면 가족들을 정죄하고 힘들게 하는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의 모습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자기의 노력으로 성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가지는 교만과 정죄함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못하기에 힘들고 불안한 길입니다. 이에 반해서, 복음적 선행은 이미 구원의 확신 가운데 행하고 있습니다. 복음적 선행은 성령님의 크신 손에 우리가 가진 적은 것들을 올려드리는 공동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방아쇠 당기는 예비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그래서 절망도 자랑도 없고 늘 감사가 있습니다.

성화와 선행을 강조할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두 번째 오류는 성화의 과정에 대한 체험적이고 도식적인 이해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자신이 성령체험을 통해 거룩한 내적 변화를 체험하였을 때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순간적 성화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는 성령님께서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역사하시며, 서로 다른 방법으로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체험을 강하게 할수록 사람들은 순간적 성화를 주장합니다. 최근 어느 단체에서는 심지어 거듭남을 성화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은 거듭난 영혼들의 성장과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베드로가 그랬듯이, 웨슬리가 그랬듯이, 주님께서 겨자나무의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순간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화의 매혹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성결대명(聖潔大命)을 주셨습니다. 신약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이 되라는 성결대명을 자녀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결대명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Numinous! 매혹의 체험들입니다. 다윗은 그 체험에 대하여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다윗은 삶의 여정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복되는 구원경험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선물보다 그 선물을 끊임없이 주시는 하나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하나님 자신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고백합니다. 그에게 성결의 명령은 이제 더 이상 욕심과 죄악에 대해 경고하는 가시철조망이 아니라, 아름다우신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웨슬리도 이러한 성화의 매혹을 알았습니다. 신학자 윈쿱(Mildred Wynkoop)은 웨슬리의 성화의 핵심에 사랑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웨슬리의 신학과 신앙여정은 사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로 시작한 웨슬리였지만, 그는 성화의 길을 걸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사랑의 길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자의 완전, 완전한 삶을 “사랑의 완전”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나가는 말





위대한 신앙인들은 입적하신 그 스님이 가르친 무소유가 아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길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써 소유와 무소유의 구별이 의미 없는 드높은 경지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세상을 변혁시키고 경외감을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제 성화의 길을 걸어 하나님의 소유가 될 때, 그러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 다시 경외와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이제 성화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구원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 조건이 되는 순종과 선행을 마음 놓고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제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현세의 변혁과 구원으로 확장되어 나오도록 성도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이제 서로를 격려하며 성화의 길, 시온의 대로를 걸어야할 때입니다.



김성원 l 교수는 서울신대와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철학적 신학을 전공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 논문은 Social Trinitarian Pneumatology in Process를 주제로 하여 복음주의적 성령론을 과정철학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를 하였다. 기독교 영성과 시대정신의 이해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작년부터 서울신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글쓴이 /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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