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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수의 구분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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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경규 조회: 107회 댓글: 0건 작성일: 작성일2017-08-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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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의 구분과 병합

1) 7은 3으로 구분된다

  숫자 7은 거룩과 완전을 의미하며 모든 일을 끝마치는 수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제 7일에 모두 마쳤고, 하나님의 절기는 7절기로 끝나며, 종말의 일들 역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재앙 등으로 모두 끝이 난다. 예수께서는 역사의 7천 년의 시대에 이 땅에 왕과 신랑으로 임하사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마칠 것이다.

  그런데 숫자 7은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 수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초림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 이삭은 그의 평생에 일곱 개의 우물을 판다. 그 중에 처음 4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겼다. 그 당시에 우물은 생존권과 직결된 것이었고 우물을 빼앗는 것은 전쟁 선포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힘이 없던 이삭은 남들이 평생에 하나도 얻기 힘든 우물을 4개나 빼앗기고도 또 다시 우물을 찾아 헤메야 했다.

  이삭은 계속 우물을 찾아 2개의 우물을 더 팠고 그 우물들은 앞으로 빼앗기지 않는 번성의 우물이 됨을 깨닫고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불렀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26:22) 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그 후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제 발로 걸어와 화친을 맺는 사건이 있었는데 화친 후에 7번째 우물을 얻어 그 이름을 ‘세바’ 곧 ‘7의 우물’이라 불렀다.

  이처럼 이삭의 일곱 우물은 4개, 2개, 1개의 우물로 구분되는데 이는 다름이 아닌 구원의 3단계를 예표하기 위한 것이다. 첫째로 빼앗긴 4우물은 땅과 형벌의 수 4를 의미한다. 4는 사단의 종노릇에 얽매이는 형벌의 수이기에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모두 빼앗기는 우물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로 번성의 우물 2개는 인간의 수, 육의 수 2를 상징한다. 이 둘째 단계는 죄와 형벌의 땅에서는 벗어났으나 그렇다고 아직 영의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닌 중간 단계의 구원을 보여준다. 마치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은 단계다.
   
  셋째로 마지막에 얻은 1개의 우물은 하늘의 수, 영의 수 1을 상징한다. 이 단계는 4와 2의 과정을 모두 통과한 자가 걷는 마지막 셋째 단계이니 완전한 구원의 단계인 7과 같다. 이 단계에 이른 자는 비로소 진정한 구원과 승리를 얻는 왕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땅의 블레셋 왕이 이삭을 두려워하여 제발로 걸어와 머리를 숙이고 화친을 제의하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삭의 7우물은 4, 2, 1의 우물로 구분된다. 이것은 예수의 완전한 7의 구원이 4, 2, 1로 구분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4의 죄인을 위해 제사장의 피의 사역을 행하시며, 2의 육의 성도를 위해 선지자의 떡의 사역을 행하시고, 1의 영의 성도를 온전케하는 왕의 사역을 행하신다. 예수의 완전한 구원 7은 이처럼 4, 2 1의 세 구원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 숫자 7은 4, 2, 1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2) 7의 구분과 병합

  이제 우리는 7을 3으로 구분하며 동시에 3을 7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성경도 이 점을 증거하는데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7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심과 동시에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여호와께 보이라”(신16:16)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7절기와 3절기를 서로 일치시키고 계심을 잘 보여준다. 

  7과 3을 일치시키는 말씀은 민수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 일을 부정하리니 그는 제 삼 일과 제 칠 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민19:11~12) 이 말씀은 시체의 정결례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 하나님은 3일과 7일에 동시에 정결케 하라고 명하신다. 왜냐하면 죽음의 부정함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완전한 7로 정결해야 하는데 7의 정결은 3의 정결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7의 수는 필요에 따라 4, 2, 1로 구분되며 또한 이 셋이 병합하여 완전한 구원의 수 7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6도 구분하고 병합할 수 있다. 6의 수 역시 필요에 따라 4와 2로 구분되며 4와 2를 합하면 6이 된다. 그런데 6의 수는 4의 죄에서 벗어나 2의 육의 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은 1이 모자라기에 7의 거룩함에 이르지 못한 불완전한 수가 된다. 

  숫자 6은 4와 2의 구원까지는 이루었지만 아직 가나안의 1의 구원이 없는 수이기에 당연히 7의 구원이 아닌 육의 구원의 수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죄인의 수준 4에서 벗어나 2의 육의 처지밖에 되지 못하는 6이 7의 흉내를 내려하는 것이 바로 6의 한계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6에 속한 자들이 사람을 모으고 힘을 모아 666과 같은 체계와 조직을 만들어 구원을 준다고 열심을 내는데 그것은 짐승과 사람의 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계시록은 666에 대해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계13:18)라고 증거하고 있다. 6의 수준에 있는 자들은 제아무리 많이 모여 삼위 하나님의 흉내를 내도 그 구원은 4와 2에 그치는 불완전한 구원, 6의 구원밖에 되지 못한다.

  * 숫자 6은 4와 2로 구분되며, 불완전한 육의 구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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