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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의 창조론

           서론 |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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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장 / 기독교 3대 창조론

- 기독교 3대 창조론의 배경

   AD 2-3세기는 기독교 신학이 처음으로 조직화, 체계화의 첫 발을 내딛는 시기였다. 교회사가 곤잘레스에 의하면 이 때 신학적 조류는 크게 세가지로 나타났다. 첫째가 터툴리안에 의한 서방신학이고, 둘째는 오리겐의 동방신학, 그리고 세번째가 이레니우스에 의한 소아시아 신학이다. 이 세가지 신학적 조류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기독교 신학을 논증함으로 창조, 구원, 기독론 등등의 교리를 설명하는 방식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며 서로 다른 시각과 견해들을 드러냈다.

   법적 경향의 서방신학 - 법률가였던 터툴리안은 로마의 법적, 제도적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학을 법적, 제도적 형태와 결합시켰다. 터툴리안은 하나님을 우주 최고의 법 제정자로 이해하였고 따라서 기독교는 우주 최고의 법을 가진 종교였다. 그의 삼위일체에 대한 표현, "한 본체와 세 위격"도 당시에 사용하던 법적 용어였다. 터툴리안의 신학은 라틴어로 기술되어 삼위일체, 원죄, 연옥 등 많은 부분에서 서방신학의 중요한 기초로 자리 잡았다.

   철학적 경향의 동방신학 - 오리겐(Origen, 185-254)은 당시 세계 최고의 철학적, 지적 조류들이 집결하는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를 대표하는 신학자답게 기독교신학을 헬라의 철학적 형태와 결합시켰다. 그는 성서의 하나님을 헬라철학이 말하는 지고의 신, 일자(一者)로 이해하였으며,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영원한 일자와 이 세계 사이의 중간 매개자인 지혜(nous)로 인식하려 하였다.

   목회 차원의 소아시아신학 - 목회자로서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을 목자되신 분으로 보았으며 인간을 양육하고 성장시켜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분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평생동안 신약과 구약, 창조와 구원이 서로 일치하여 동일한 하나님의 섭리를 성취하는 것임을 증거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당시 신구약의 통일성을 부인하고 창조와 구원을 분열시키려 한 영지주의의 책략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

   위의 세갈래의 신학적 조류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논증하는데 있어서도 그 주장들이 각각 상이하였는데 위의 세 조류를 따라 ‘창조론’에 대한 관점 역시 세가지의 형태로 나타났다. 먼저 터툴리안의 창조론을 살펴 보자.


1. 터툴리안 - 완결 창조론

   터툴리안은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 기사를 있는 그대로 증거하였다. 터툴리안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선재하는 어떤 물질로부터가 아니라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다. 그는 태초의 창조 상태는 완전한 질서의 상태였으며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은 아름다운 것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목표였다고 한다. 터툴리안에게 태초의 창조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더할 필요가 없는 완결된 상태였다. 이렇게 태초의 창조를 완결 상태로 이해하는 것을 "완결창조론"이라 한다. 완결창조론은 "하나님이 무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모든 것은 완전하였다'는 6일 동안의 창조 기록을 확증하는 창조론이다.

   터툴리안의 ‘완결 창조론’은 현재 우리가 알고 배우고 있는 창조론과 같다. 완결창조론의 특징은 6일 동안의 창조 사실을 문자적으로 기술된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결창조론은 그 자체가 성경의 기록을 근거한 것이기에 논쟁의 여지가 없고 당시의 모든 교회가 수용했던 창조론의 기초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2. 오리겐 - 이중적 창조론

   오리겐(Origen, 185-254)은 하나님의 창조를 영의 창조와 육의 창조로 구분하였다. 그는 플라톤의 영향을 입어 하나님의 창조를 이렇게 이중적으로 구분하였는데 영의 창조란 순수한 영들만이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세계의 창조를 말하며, 육의 창조는 육체와 물질로 구성된 피조세계의 창조를 말한다. 오리겐에 의하면 처음 영의 창조시에는 순수한 영들만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참여하며 평화와 사랑이 충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영들이 나태하여 죄에 빠지게 되었고 그들은 타락의 정도에 따라 천사, 인간, 마귀의 영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이런 악한 상황 때문에 하나님은 이차적으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으며 물질세계 안에서 타락한 영들이 견책을 받고 새롭게 되도록 계획하셨다고 말한다. 오리겐은 이같은 이중적 창조론을 통해 전 인류가 충분한 견책을 받은 후에는 모두 빠짐없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최후에는 마귀마저도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플라톤주의의 신 개념인 일자(一者)로서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한 물질세계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같은 창조론은 성경의 창조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변적인 창조론으로 후대의 기독교는 오리겐의 이중 창조설, 피조세계의 영원성, 영혼의 선재와 순수 영들의 세계로의 복귀, 마귀의 최후 구원 등의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거부하였다. 교회는 543년, 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상식있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가 이러한 창조론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3. 이레니우스 - 통시적 창조론

   이레니우스는 사도 요한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에게 직접 서머나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던 폴리갑에게 신앙을 배웠으며 177년경 리용(Lyon)의 장로가 되었고, 얼마 안되어 리용의 포티누스(Pothinus)가 순교하자 그의 뒤를 이어 감독직을 이어 받았다. 이레니우스는 "젊은 시절에 폴리갑의 교리를 주의깊게 경청하였고 그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에 새겨두고 항상 그 내용들을 회상하였다"고 말한 것처럼 평생동안 폴리갑을 존경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이레니우스는 폴리갑의 사도적 신앙을 따라 감독직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소아시아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사도의 진리를 탁월하게 증언한 교부가 될 수 있었다.

   이레니우스의 관점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인간의 원형(原形)으로 이미 존재하고 계셨으며 아담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목적으로 창조된 존재였다. 따라서 아담은 처음부터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성장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에 온전히 이르러야 하는 존재였고 이러한 성장의 과정은 창조의 계속 과정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레니우스에게 인류의 역사란 창조의 계속되는 과정-아담을 그리스도의 형상에 일치하게 만드는 창조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시초에 인간은 타락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러야 하는 목적을 상실하고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인간이 죄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원본이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실패한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려고 땅에 내려 오셨다. 이로써 이레니우스는 구원이란 인간을 최초의 무죄한 아담의 상태로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성하는 것이 구원의 최종목표라고 하였다. 이레니우스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하나님 곧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성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신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이레니우스는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간과 우주의 총괄적이고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의 신화(Divinization), 곧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인간이 그리스도처럼 되는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창세 전에 성육신을 예비하셨으며,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의 원형으로 선재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레니우스에게 아담의 창조는 창조의 완성이나 동시에 창조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담은 창조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향해 에덴에서 시간의 삶을 출발한 존재였다. 이레니우스에게 시간의 역사는 타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파생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조의 또 다른 과정으로 예정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창조는 땅의 시간의 역사 안에서 인간을 그리스도처럼 완성할 때에야 종결된다. 이 때문에 이레니우스는 인류 역사와 구원의 목적이 창조의 최종완성을 위한 것이며, 창조의 틀 안에서 창조와 구원의 통일적인 조망이 가능함을 밝히고 있다. 이것을 이레니우스의 ‘통시적 창조론’이라 한다.

   통시적 창조론은 터툴리안의 법, 오리겐의 철학이라는 틀과 달리 '창조'라는 틀을 통해 성경 전체를 논증하는 독특성을 보여 준다. 통시적 창조론은 성경전체와 역사전체, 인류전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이해하지 않고는 감히 진리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이레니우스가 사도요한의 진리를 계승하는 가운데 통시적 창조론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도요한이야말로 하나님의 사역 전체를 총제적, 최종적으로 진술했던 계시의 최후의 전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이와 같은 이레니우스의 통시적 창조론을 계승하지 않고 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이레니우스의 창조론은 잊혀진 것이 되었으며 그것은 겨우 문서적으로만 남아 있는 유골처럼 되었다. 그 이유는 초기 기독교 신학을 종합했던 어거스틴이 터툴리안의 창조론을 교회 창조론의 모범으로 정립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거스틴 이후 서방교회는 이레니우스의 창조론을 소외시키고 대신에 터툴리안의 창조론을 따르며 터툴리안의 완결창조론을 교회 창조론의 표준으로 굳게 믿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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