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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의 창조론

           서론 |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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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장 / 창조의 컨셉

- 창조의 목적

   이제 "하나님의 창조 목적(concept)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 문제는 창조론을 논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라 할수 있다. 창조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창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성경의 다른 주제들에 대한 해석마저 달라지기 때문에 창조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대하다.

   어거스틴은 세계를 아름답고 선하게 만든 것 즉 '선한 창조'가 창조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같은 어거스틴의 주장은 궁색하게 보인다. 선한 창조란 하나님의 창조를 반영하는 한 특성일 뿐이지 그것을 굳이 목적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대부분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대답은 너무 포괄적이다. 이러한 대답은 어떤 답도 모두 대답이 되게 만든다. '아름다운 창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고, '거대한 창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니 다른 어떤 목적을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모두가 답이 되도록 만든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대답은 좀 더 구체적으로 진술되어야 한다. 성경이 이에 대해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밝히는 창조의 목적에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마땅한 태도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레니우스가 밝혔던 창조의 목적은 대단히 구체적이면서 동시에 전(全)성경적인 흐름에 일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레니우스는 '인간을 그리스도처럼 만드는 것'을 창조의 목적이라고 밝혔었다. 이같은 창조의 목적은 사도 요한에 의해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알려졌고 폴리갑을 통해 이레니우스에게 계승된 초대교회의 창조론의 핵심이었다.


- 인간 창조의 목적(Concept)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인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의 중심이 아닌가. 감사하게도 성경은 인간의 창조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잘 안내하고 있다. 태초에 인간이 창조되고 있는 창세기 1:26절의 말씀을 살펴 보도록 하자.

   창1:2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잘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시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이 말씀은 오늘날 흔히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이 말씀을 문화명령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 말씀을 근거로 문화의 성경적 의미를 해석해 보려고 애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명령의 의미로만 해석을 하면 월터스(A.Waltres)의 말대로 하나님의 명령은 취소될 수 없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 땅에서 문화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필자는 그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문화란 것은 종말적으로 땅의 것들과 함께 폐하여지는 것인데 만일 문화가 인간이 성취해야 할 명령이 되면, 그럼 교회가 땅의 문화를 완성하기 위해 사역을 해야 하며 문화야말로 교회가 최종적으로 완성해야 할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이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에는 결혼제도도 없어지고 인간이 신령한 몸을 입어 땅의 것들이 폐하여 질 것이라는 말씀과 문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말씀은 서로 일치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모순이 잘 해결이 안되어 한동안 창1:26절 말씀을 중얼중얼 외우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필자는 갑자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 말씀은 땅을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이기 이전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Identity)을 설명하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에 앞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정의를 미리 설명하시는 부분으로 깨달아진 것이다. "아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바로 인간의 컨셉(Concept) 이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경의 여러 말씀들이 창1:26절 말씀을 따라 필림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 듯 하였다.

   필자는 창1:26절과 연결되는 신구약 말씀들을 살펴 보면서 이 목적(Concept)이 아담에게 성취되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랬다. 인간의 정체와 본질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에게는 실패된 것이었다. 태초의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아직은 어린아이처럼 미숙하고 불확정적인 존재로 서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였으나 선악과를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아직은 흙의 몸을 입고 있어 하늘의 영생의 존재가 되지 못한 미확정의 존재였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성장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영광을 발현해야 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계속적인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죄에 빠져 사탄과 결탁함으로 창조의 과정을 좌초시켰고 더불어 자신에게 있던 하나님의 형상마저 훼손함으로 인간 창조의 목적이 그 출발에서부터 실패하도록 만들었다.

   아담은 창1:26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형상"의 실체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온전한 영광을 발현하는 실체가 되지 못하였다. 그 형상의 영광은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하게 발현되었다. 그리스도야말로 태초부터 계셨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의 실체다. 성경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1:15),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고(히1: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빌2:6)이심을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지으셨다고 했을 때 사실 우리는 그 형상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형상의 실체를 경험하고 만지고 알게 되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창1:26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의 실체는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아담은 그 모형의 역할을 하는 자임을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그리스도는 성도를 이끌어 자신의 형상으로 완성하는 분임을 알 수 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하셨으며(롬8:29), 성도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이고(골3:10),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충만하게 이루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엡4:13),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고(골1:18),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성도가 되도록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증거하였다(갈4:19).

   그리하여 성도들은 최후적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를 것이다(고후3:18). 요한도 '주께서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될 것'(요일3:2)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인간 창조의 최종 완성의 상태가 아니겠는가. 이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는 그 거룩한 영광과 참 안식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은 태초의 창조시에 완결되지 않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종말적으로 성취되는 것임이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창조는 태초의 6일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종말을 통하여 비로소 완성되는 전(全)성경적인 사역이 된다.

   이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시리게 하자 하시고(창1:26)"라는 말씀을 재인식할 때가 되었다. 기독교세계관론자들은 이 말씀이 문화명령을 의미하는 것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다스려 문화를 생산하기 위한 존재이고, 이 다스림의 문화를 위해 인간이 하나님이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해석이라 하기 어렵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은 곧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과 같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태초의 7일은 창조의 완성임과 동시에 창조의 새로운 출발이며 인간의 최종완성은 구원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를 때에야 완성된다.

   그리고 '땅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명령이기보다는 땅의 문화를 통해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삶의 형태인 것을 설명하는 말씀이라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곧 땅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명령이기 보다 선포의 의미가 강하며 하나님이 인간이 문화적인 방식으로 땅에 존재하는 자임을 공표하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해야 문화는 완성해야 하는 목적으로써의 무거운 굴레를 벗을 수 있으며, 단지 때가 되면 저절로 벗어버리는 땅의 방식으로서의 유한적 본질에 해당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가 모두 완결된 과거의 일이라거나, 창조의 목적이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애매하게 말하거나,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의 실체적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나간 오랜 세월, 1800년의 세월 동안 주장된 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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