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스사역

       
     
 어둠의 예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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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장 / 칼빈의 이중 예정론

- 칼빈의 이중 예정론

   중세 천년 동안 어거스틴의 예정론은 거의 죽은 것처럼 잊혀져 있었다. 사실 중세 카톨릭은 처음부터 어거스틴의 예정론을 전체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었다. 카톨릭은 반(半) 어거스틴주의라는 중간적 논리로 그의 교리를 수용하였을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마저도 점점 퇴색되었을 따름이다.

   역사적으로 어거스틴주의가 완전한 형태로 수용된 것은 종교개혁에 이르러서다. 어거스틴이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요 그의 사후에도 그 본질이 제대로 용인되지 못했던 예정론은 종교개혁과 칼빈을 통해 비로소 교회 안에서 완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전통으로 확립시킨 장본인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통해 예정론을 주장하였는데, 그의 예정론은 어거스틴의 예정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모방하였다. 단지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어거스틴에 비해 유기의 문제를 강조하고 그것을 조금 더 선택의 문제와 대비시켰다는 것 뿐이다. 칼빈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에 의해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도록, 다른 사람은 영원한 멸망을 받도록 창조하기로 결정하셨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창세 전부터 선택과 유기의 두 운명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이중예정론‘을 제시하였다.


- 예정론은 하나님을 저주의 원인자로 만든다

   이러한 이중예정론은 엄청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이중예정론을 살펴 보면 그 안에는 비논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우선적으로 예정론은 예정의 이유나 원인을 밝히지 못한다. 예정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어떤 자는 선택으로 혹은 유기로 예정하시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어거스틴이나 칼빈의 공통적인 대답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태고의 신비에 속해 있고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들의 변명이다. 아니면 기껏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칼빈의 대답대로 예정론의 원인은 알 수 없거나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고작이다. 이 말은 예정의 절대 원인이 하나님께 있으며 선택과 유기의 원인 역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예정론이 갖는 가장 큰 모순인데 예정론의 문제는 그 모든 원인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돌려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말이다. 이는 곧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의 원인이지만 동시에 저주와 죄의 원인자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선택의 이유도 하나님이요 저주의 이유도 하나님이 되니 결국 하나님은 두 얼굴의 하나님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예정론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 성품을 이중인격으로 분열시키는 모순을 드러낸다.


- 예정론은 하나님이신 예수를 소외시킨다

   논리적으로 보면 예정론의 원인은 ‘오직 예정’ 밖에 없다. 성경은 믿음으로 혹은 은혜로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예정론에 따르면 이같은 설명은 핑계에 불과하다. 예정론에 따르면 사람이 구원을 받는 원인은 믿음도 아니요 은혜나 보혈 때문이 아니며 오직 창세 전부터 구원받기로 결정된 예정만이 근원적인 원인이 된다. 믿음이나 은혜나 보혈 등은 택함을 받았을 경우에만 주어지는 부차적인 통과의례의 선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근원적으로 보면 예수도 구원의 원인이 아니요 보혈도 구원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오직 예정이 있어야만 예수도 따르고 보혈이나 기타 필요한 모든 은혜가 따르게 된다. 이같은 논리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곧 예수보다 예정이 중요시되는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이는 구원에서 예수 곧 하나님을 소외시키는 의미가 되고 하나님을 부차적으로 만드는 논리로 이어진다.


- 예정론은 유기의 책임을 인간에게 덮어 씌운다

   예정의 원인이 예정밖에 없다는 사실은 선택의 원인도 하나님이요 유기의 원인도 하나님이라는 논리를 지지한다. 이 경우 인간에게는 어떠한 선택의 자유나 기회도 있을 수 없다. 유기된 인간은 창세 전부터 유기로 결정된 상태에서 유기된 자로 태어나며, 복음을 들어도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회개할 수도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회개치 않고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판받아 유기된다.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논리인가. 사람의 법에도 자신의 의지에 반해 무력이나 협박에 의해 강제된 의지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예정론은 믿지 못하게 예정해 놓고, 믿지 못할 존재로 태어나게 만들고, 믿지 못하는 존재로 살게 해 놓고서도, 결국은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기시키는 일을 자행한다. 이같은 예정론의 논리는 인간의 상식보다 못한 논리가 아닌가?

   결국 예정론은 처음에는 선택과 유기의 원인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말해 놓고, 나중에는 태도를 바꾸어 유기의 원인이 유기된 자에게 있다고 죄를 뒤집어 씌우는 모순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유기된 자에게 분노의 심판을 퍼붓는다. 이는 근본적으로 예정론의 교리가 논리와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요, 인간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미신에 지나지 않는 교리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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