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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의 창조론

           서론 |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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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장 / 창조와 자연

- 태초의 창조는 창조의 실체인 동시에 모형이다

   이레니우스가 증거한 창조의 목적은 성경의 창조를 이해하는 중대한 마스터 키(Master key)에 해당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그 key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창조의 목적과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창조의 목적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구원과 완전하게 일치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터툴리안의 '완결창조론'을 답습했던 어거스틴에게도 이러한 마스터 키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창조의 목적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창조와 구원과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일에 실패하였다.

   물론 어거스틴에 의한 세 가지 "창조 변증"은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그것을 터툴리안에게 물려 받았지만 그것은 이미 이레니우스가 증거했던 것이었다. 이레니우스는 터툴리안에 앞서 무(無)로부터의 창조, 선한 창조, 하나님의 두 손, 곧 성령과 성자에 의한 삼위의 창조를 가르쳤었다. 예나 지금이나 "삼위 하나님이 무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문제삼을 기독교인이 어디 있겠는가.

   어거스틴의 창조론의 문제는 '창조 변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창조 변증'이 마치 창조론의 전부인양 믿게 만드는 것에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창조가 태초의 제6일에 모두 끝났다는 오해를 하게 만들어 창조의 의미는 심각하게 축소된다. 또한 태초의 6일의 창조가 창조론의 전부가 되며 하나님의 창조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로 퇴색하고 만다.

   태초의 6일의 창조가 과연 하나님의 창조의 전부이며 실체일까? 그렇지 않다. 도리어 성경은 6일의 창조가 일차적으로는 창조의 실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한 창조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 그 실례들을 살펴 보자.


1. 아담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태초의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아담은 완성된 인간이었으나 동시에 새 인간을 표상하는 모형이요 그림자로 존재하였었다. 아담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종 실체가 아니라 단지 장차 오실 둘째 아담인 예수를 예표하는 자로 서 있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5:14)"


2.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한다


   하나님은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최초의 가정을 이루라 하셨다. 그럼 하나님이 이들의 가정을 통해 사회구조가 시작되고 인간의 사회구조를 아름답게 하시려고 목적하셨는가? 그런 점도 있으나 그것은 정확한 대답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 역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창조의 최종 실체가 아니라 모형과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가.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고 하였다. 바울은 아담과 하와의 결합에는 숨겨진 상징이 있다고 증거한다. 아담과 하와는 장차 있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하는 그림자로 있었다는 것이다.


3. 아담의 복은 성도가 받는 복을 예표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고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 이 창1:28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아담이 받은 복에는 제한적인 요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댜. 곧 아담의 복에는 하늘에 속한 복이 없고 오직 '땅'에 속한 복 뿐이다. '땅'에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며, '땅'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복이 실제적인 복이었으나 동시에 그것은 미래적으로 성도들이 받을 복을 예표하는 모형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주시되(엡1:3)"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속한 성도에게만 하늘의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주신다. 그러니 아담의 복은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의 최종 실체가 아닌 그림자의 역할을 하는 복이었던 셈이다.


4. 최초의 하늘과 땅은 영원한 하늘과 땅을 예표한다

   하나님은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물론 이것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님이 분명하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인자가 다시 올 때 하늘은 큰 소리로 떠나가며 땅과 땅에 속한 모든 것들이 불타 다 없어질 것이다(벧후3:10). 처음의 하늘과 땅은 인간의 타락과 죄 때문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태초부터 처음 하늘과 땅은 영원한 하늘과 땅을 표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하늘과 땅은 신령한 영생의 몸을 입은 성도들에게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다. 신령한 성도들은 땅의 육체를 버리고 신령한 몸을 입었기에 결혼이 필요 없어지고 심지어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도 폐하여 질 것(골2:15)이다. 하늘의 신령한 성도들에게 더 이상 땅의 식물을 먹는 상황은 적합하지 않기에 땅은 폐해지고 만다. 보다 완전한 하늘과 땅이 임할 때에 임시적인 하늘과 땅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5. 태초의 창조는 새 창조의 그림자에 해당한다

   위와 같은 여러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태초의 창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또 다른 목적을 위한 그림자의 역할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설명이 길어지는 관계로 줄였으나,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고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 역시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언약을 예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첫 안식 역시 구원을 통해 성취할 그리스도의 영원한 안식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창2:2)" 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가 일곱째 날에 모두 끝난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경의 여러 짝들과 비교하여 볼 때 절대적인 최종 상태의 완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도하신 수준 만큼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첫 창조가 정해진 때가 차기 까지, 하나님의 비밀을 완성하기까지의 용도로 쓰기에 적합하고 완전하다는 의미에서의 완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의 창조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을 만큼 아름답고 완전한 것이었으나 그것 차체가 창조의 목적이나 최종 실체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태초의 6일의 창조는 그리스도의 새 창조를 향한 그림자요 예표였다. 그리고 태초의 첫 창조는 그 자신의 참된 실체인 새 창조를 완성하기 위해 출발한 창조였다. 태초의 창조는 그 자체로 완전하였으나 보다 완전한 하늘의 창조를 향해 출발했던 창조의 서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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